서 론
출생 이후 영아는 독립적인 수면-각성 패턴을 형성하며 생애 초기 급격한 수면 변화를 경험한다[1]. 영아의 일주기 리듬은 신체 성숙과 함께 코르티솔, 멜라토닌의 분비가 시작됨에 따라 생후 6개월 시점까지 비약적으로 발달하며, 생후 12개월에 이르면 유아의 약 70%-80%는 일주기리듬이 정착되어 낮잠은 줄어들고 밤잠은 길어지는 통합된 수면 패턴이 나타난다[2,3]. 생후 6개월경 영아는 내부의 각성 상태를 스스로 조절해 입면 시나, 야간에 각성했을 때 부모나 다른 보호자의 도움 없이 잠들 수 있는 능력인 자기조절 기술(self-soothing skills)을 배우게 된다[4]. 이에 따라 대부분의 영아는 생후 1년 이내에 안정된 수면 패턴을 확립한다. 그러나 영유아 수면 문제는 20%-30% 사이로 비교적 흔하다[5].
행동 불면증은 소아 불면증에서 가장 빈발하는 문제로, 국제수면장애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Sleep Disorders 3rd edition, ICSD-3)에 따르면 빈번한 야간 각성을 특징으로 하는 수면개시 관련 유형(sleep-onset association type)과 잠자리에 드는 것을 거부하거나 부모에게 반복적인 요청을 해 취침 시간을 연기하는 한계 설정 유형(limit-setting type), 그리고 수면개시 관련 유형과 한계 설정 유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복합 유형(mixed type)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영유아 수면 문제는 적절한 개입 없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영유아와 가족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6]. 최근 영유아 수면 문제와 발달의 관련성에 대해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수면 문제는 아동기의 사회 및 정서적 문제, 신경발달 등과 관련이 있었으며[7,8] 부모 수면의 질이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9]. 특히 예민한 부모는 자녀가 깨는 것과 같은 각성 관련 수면 자극에 부정적인 주의 편향(negative attentional bias)이 발생할 수 있으며[10], 수면에 대한 선택적 주의와 모니터링은 수면장애를 유발하고 지속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11]. 즉 가족 내 수면의 질을 위해 영유아 수면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부모와 자녀를 위한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Sadeh의 상호작용 모델(transactional model)은 영유아 수면 문제의 발생과 유지 원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다[12]. 이 이론은 영유아 수면 문제가 부모와 유아의 개인적 요인 및 환경적 요인과 양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며, 특히 부모의 취침 시간 개입과 영유아 자녀의 반응 간 상호작용이 영유아 수면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부모의 취침 시간 개입과 영유아 수면 문제의 관련은 지속적으로 보고되어 왔는데[13], 취침 시간에 부모가 곁에 머무르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달래거나 젖을 물리는 등의 개입은 영유아 자녀의 자기진정능력 개발을 방해하며, 잠에 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합을 형성해 수면 문제를 야기한다[14,15]. 취침 시간에 나타나는 부모의 행동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Beck의 인지이론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16]. 유아의 수면에 관한 부모의 신념은 ‘아이가 밤중에 깼을 때 다시 잠들 수 있도록 부모가 개입해야 한다’는 영유아 수면에 방해가 되는 태도, 그리고 유아가 밤중에 깨면 즉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생각으로 구성되며, 부모가 영유아 수면과 관련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결정한다[17-20]. 또한 수면에 대해 역기능적 신념과 태도를 가지고 수면 관련 단서에 편향된 주의를 가지며 불면으로 인한 파국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면증을 유발하고 증상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따라서 영유아 수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영유아 수면 문제 상황에서 나타나는 신념과 행동의 연결고리를 찾고 부모가 자신과 영유아 수면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바와 왜곡된 인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한 개입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때 영유아 수면에 대한 태도와 행동 양식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단일 문항을 조사에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으나 부모가 유아의 수면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동양 문화권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21]. 미국 내 조사에서는 유아 수면 문제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과잉 개입으로 여겨지는 부모와 자녀의 코슬리핑(co-sleeping)비율이 백인 가정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두 배 이상 더 흔하게 보고되었으며[22] 203명의 걸음마기 아동을 양육하는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서도 64.5%가 코슬리핑을 취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3]. 코슬리핑을 취하는 경우 독립 수면을 취하는 집단에 비해 더 늦은 취침 시간과 더 짧은 야간 총 수면시간, 주관적으로 평가한 영유아 야간 각성 횟수가 유의하게 높게 보고되었다[24,25]. 이렇듯 국내를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 빈번한 수면 양식인 코슬리핑과 수면 문제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으나 그 사이를 매개하는 인지의 내용은 연구된 바 없으며, 지금까지 국내에서 부모와 영유아의 수면을 이해하고자 수행된 질적연구는 취침 시간 루틴이나 수면을 촉진하기 위한 행동을 파악하는 것에 그쳤을 뿐이다[26].
일반적으로 선행 연구들은 한 개인이 본인의 수면에 대해 갖고 있는 역기능적 신념이 그 자신의 수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주로 조사해 왔다. 그러나 영유아의 수면에 대해 부모가 어떠한 역기능적 신념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영유아의 수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영유아의 수면을 어떻게 부모가 인지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며, 특히 수면 형태가 문화적으로 다른 동양권 국가에서는 조사된 바가 없다. 유아 수면 문제와 문화적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것의 중요성이 선행 연구에서 강조된 바[19,20], 본 연구에서는 질적 분석을 통해 한국 부모가 경험하는 영유아 수면 문제의 양상과 특징적인 영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을 파악하고, 추후 영유아 수면 문제 해결을 위한 개입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방 법
연구설계 및 연구참가자
본 연구는 한국 부모가 가지는 영유아 수면 문제 경험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태도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역기능적인 인지의 종류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일대일 심층면담을 통해 수행되었다. 구체적으로 부모가 생각하는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 영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태도와 믿음, 영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대처 방략, 영유아 수면 문제로 파생된 부모의 수면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면담을 진행하였다.
한국에서 취침 시간뿐 아니라 수면 문제로 인해 야기된 주간 문제 경험에 대한 풍부한 서술이 가능한 보호자는 주로 어머니인 실정으로, 본 연구에서는 수면 문제를 보고하는 생후 6개월에서 36개월 사이의 자녀를 둔 만 19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 어머니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참가자들은 한국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 게재한 연구 설명문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하였다. 최초 모집된 79명의 참가자 중 영유아 자녀의 수면에 어려움이 없다고 보고하거나, 자녀가 조산아인 경우는 참여에서 제외하였다. 더불어 부모의 불면 경험과 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인지 왜곡 간 관계를 명확히 알아보고자 7문항 자기보고식 검사인 불면증 심각도 척도(Insomnia Severity Index, ISI)를 실시하여 점수가 8점 미만으로 경도(sub-threshold) 불면증의 기준 점수[27]에 미치지 못하는 자 역시 참여에서 제외하였다. 마지막으로 영유아의 수면 양상이 발달에 따라 급변함을 고려, 자녀의 연령을 생후 6-11개월, 12-17개월, 18-23개월, 24-29개월, 30-36개월의 다섯 개 군으로 나누어 각 집단별 최종 연구참여 의사를 밝힌 두 명씩 총 10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였다(Table 1). 면담 종료 후 참가자당 2만 원의 사례가 주어졌으며 전체 과정은 성신여대 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하에 수행되었다(SSWUIRB-2020-034).
자료수집 및 분석
심층면담은 2020년 10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 팬데믹 중 이루어져, 감염병 예방을 위해 비대면 화상방식으로 개별 수행되었다. 면담은 녹화되었으며, 모든 참가자는 이에 대해 사전에 참가 동의서를 작성하였다. 면담은 일인당 60분에서 90분 사이로, 한 명의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수면 전문가와 면담 프로토콜 교육을 받은 한 명의 대학원생이 진행하였다.
심층면담은 반구조화된 면담지침을 따라 시행되었다. 심층 면담은 질적 연구의 대표적 연구 방법으로 개인 또는 다수의 연구 참여자 간 대화에서 연구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심층 면담의 다양한 실시 방법 중, 본 연구에서는 반구조화된 면담법을 사용하였다. 반구조화된 면담은 사전에 구성한 매뉴얼에 따르되, 참여자의 반응이나 면담의 흐름에 따라 질문의 순서와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 유연하고 폭넓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또한 연구 참여자가 ‘자신과 자녀의 수면 경험’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능한 다양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개방형 질문과 공감, 반영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적극적인 발화를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연구에 사용된 반구 조화된 면담 매뉴얼은 Supplementary Materials 1, 2 (in the online-only Data Supplement)에 수록하였다.
자료 분석은 각 개인이 현상을 경험하며 공통적으로 체험한 의미를 기술하는 데 초점을 두는 현상학적 연구법[28]에 따라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 활용한 현상학적 연구법은 Giorgi29가 제안한 질적 연구 분석을 위한 다섯 가지 구체적인 단계를 따랐다. 1) 언어 자료 수집: 녹화된 영상을 전사하여 발화 자료를 수집하였다; 2) 자료 인식: 전사된 자료를 여러 차례 읽으며 연구 참여자의 진술을 거시적으로 파악하였다; 3) 의미 단위 구분: 전사된 자료 중 연구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 문장에 표시를 해 가며 의미 단위를 추출하였다. 이 과정은 여러 차례 자료를 숙독하며 진행되었다; 4) 학문적 용어 변환: 앞 단계에서 얻은 영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의미 단위는 일상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이를 적절한 학문적 용어로 대치하였다; 5) 의미 구조 통합: 획득한 의미 단위를 원자료의 구조 맥락에서 다시 살피고, 연구 문제의 근본을 통합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일관적인 진술을 도출하였다. 이상의 분석은 한 명의 석사학위 과정 중에 있는 저자가 주로 진행하였고, 도출된 의미 단위는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수면 전문가 1인이 검수하였다. 의미 단위의 코딩에는 질적연구를 위한 소프트웨어인 MAXQDA (ver. 20.0.7; VERBI Software, Berlin, Germany)가 사용되었다. MAXQDA (VERBI Software)는 한국어 전사와 코드 생성, 코드의 범주화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로 국내 출판된 수면 분야의 질적연구에서도 사용이 확인되었다.
결 과
한국 어머니 10인이 경험하는 영유아 수면 문제를 분석한 결과 ‘어머니의 도움을 구함’, ‘수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론’, ‘어머니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함’,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염려’, ‘피로와 부정적 정서 경험’, ‘불면 경험’ 6개의 의미구조가 도출되었다. 각 의미구조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내포된 영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어머니들의 역기능적 신념을 제시하였다. 의미구조의 하위 구성요소와 의미 단위는 Table 2에 제시하였다. 인용문은 문법과 맞춤법에 어긋나더라도 어머니의 발화를 가능한 그대로 옮겼으며 각 하위 의미구조별로 1-2개의 인용문을 제시하였다. 추가적인 인용문이 있는 경우는 Supplementary Material 2 (in the online-only Data Supplement)에 수록하였다.
의미구조 1: 어머니의 도움을 구함
어머니들이 경험하는 영유아 수면 문제의 양상은 ‘어머니가 없이는 잠들지 못함’, ‘한계 설정의 문제’로 잦은 각성과 취침 시간 한계 설정의 문제로 대표되는 소아 행동 불면증의 주요 증상과 일치하였다. 어머니들은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라는 현상을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아이가 잠들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는 규칙 형태의 역기능적 중간 신념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위구조 1.1: 어머니 없이는 잠들지 못함
참가자들은 최초 입면 시 자녀가 잠들기 위해 어머니를 필요로 한다고 여겼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옆에 없으면 혼자서는 잠들 수 없으며, 잠들기 직전까지 다른 보호자가 돌봐 주어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머니를 찾는다고 보고해 잠들기 위해서는 가까이에 물리적인 어머니의 존재를 필요로 함을 보고하였다.
“옆에 사람이, 제가 없으면 특히 잠을 잘 못 자고 그리고 혼자 침대에서 잘 수가 없더라고요.” (참가자 8, 28개월)
어머니를 찾는 문제 경험은 최초 입면 시만이 아니라, 밤중에 각성했을 때에도 보고되었다. 아이들은 실제로 다른 방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니거나, 직접적인 어머니의 신체 접촉이나 돌봄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중간에 깨면 그 방법밖엔 없더라고요. 깨면 안아 달라고 와요. 제가 안아서 들어주면 좀 자요.” (참가자 9, 30개월)
의미구조 2: 수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론
어머니들은 아이의 수면 문제를 경험하며 그 원인을 ‘아이가 기질적으로 예민하기 때문’, ‘애정이 부족했기 때문’, ‘배고프기 때문’, ‘어머니가 부재했기 때문’과 같이 추측하였다. 그러나 기질이나 생리적 문제는 영유아 수면 문제 발생의 부수적 요인으로, 어떤 어머니도 영유아 수면 문제의 핵심 원인을 알지는 못하였다. 어머니들은 수면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수유나 의미구조 3에서 나타나는 곁에 머무르며 바로 반응하기 같은 비합리적인 행동 전략을 취했다.
하위구조 2.1: 아이가 기질적으로 예민함
어머니들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우리 아이는 훨씬 심하게 울거나 날 때부터 예민하다고 보고하는 등 타고 난 특성이 수면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실제로 예민한 기질임이 판명된 사례는 없었다.
“기질상 예민한 것 같더라고요. 아기 때부터 먹는 것, 잠자리 환경 이런 것에 예민한 걸 보니 아무 데서나 잘 자는 아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략) 영양적인 문제는 전혀 없고 그런 성격적인 문제.” (참가자 9, 30개월)
하위 구조 2.2: 애정 부족
어머니들은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를 돌봄이 부족했거나 애착 형성이 잘 안 되었기 때문으로 귀인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노력이나 애정이 부족했다는 추측은 후술할 어머니의 정서 경험 중 죄책감과 연관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낮에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런 것들이 잠자면서 불편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혹은 뭔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애가 밤잠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참가자 3, 14개월)
“인터넷 찾아보니 불안정 애착 때문에 자면서도 엄마를 더듬으면서…. (중략) 엄마랑 눈 맞출 시간이 없어서… 제가 그냥 부엌에 있을 때도 제가 없으면 막 ‘엄마~’ 이러면서 뛰어 오거든요. 그래서 엄마에 대한 불안함이 큰가? 엄마랑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나?” (참가자 4, 17개월)
의미구조 3: 어머니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함
어머니들은 자녀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아용품을 구매하거나 잠자리 환경을 바꿔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뿐 아니라 밤 동안 자녀의 곁에 계속 머무르며 자녀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자녀가 깨거나 우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이들은 자녀가 우는 것, 즉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내할 수 없어 그 상황을 면하고자 괴로움에도 자신의 잠을 희생하는 것이 낫다고 보고하였다. 이렇듯 자녀의 울음을 고통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아이를 울려서는 안 된다’는 규칙으로 발현되었으며, 의미구조 4와 연결되어 규칙을 어길 시 파국적 결과인 발달 문제로 이행될 것이라는 경직된 신념이 드러났다.
하위 구조 3.1: 다양한 방법을 시도함
어머니들은 영유아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상품을 구매하거나 대처 방안에 대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력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으며 이는 후술할 답답함의 경험과 이어졌다.
“따로 자는 게 문제인가 싶어서 매트리스도 샀고, 먹이는 게 잘못되었나 싶어서 영양제나 고기도 먹여보고. 낮에 활동이 부족한가 해서 어린이집 안 다닐 땐 밖에서 계단도 걸어보고. 근데 똑같더라고요. 낮에 많이 놀아도, 먹여도, 애정표현을 덜 했나 싶어서 더 안아주고, 혹시 잘 때 잠옷이 추웠나 싶어서 다른 것도 사보고. 기저귀에 문제가 있었나 해서 바꿔보고, 습도에 문제가 있나? 해서 가습기도 사보고. 제가 해 볼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해탈한 것 같아요. 여기서 더 해볼 게 없더라고요. 제 건강만 나빠졌지.” (참가자 9, 30개월)
하위 구조 3.2: 즉각적인 대처
어머니들은 자녀가 깨면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여기며 자녀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를 위해 자녀와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유지했는데, 방 바깥처럼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자녀의 울음 같은 신호가 감지되면 바로 그것에 반응해주기 위해 자녀의 곁으로 돌아갔다.
“일단 제가 옆에 같이 누워있는 상황이면은 옆에서 살, 배를, 이렇게 찾아다가 애 손에 대주고요. 밖에 나와 있어서 자리를 비웠던 상황이면 이제 빨리 잉~하는 소리 듣자마자 바로 뛰어 들어가서 바로 토닥토닥하면서 그때도 이제 살 바로 보여주고.” (참가자 6, 23개월)
하위 구조 3.3: 아이의 고통을 감내할 수 없음
특히 어머니들은 영유아 자녀가 울거나 힘들어한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감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는 것을 빨리 달래야 하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피하고 싶기에 어머니들은 수면교육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시도하기보다 자신의 수면을 희생하며 밤 동안 자녀를 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기띠를 하면 그냥 쉽게 빨리 잠이 들더라고요. 최대 긴게 한 10분만에 자는 거니까…그냥 내가 좀 고생하고 말자? 이런 생각으로…. 아기가 못 자고 나면 그 다음날까지 많이 힘들어 하길래.” (참가자 2, 10개월)
“아 저는 못하겠어요. 어쨌든 애기를 울려야 하잖아요. 되게 많이. 차라리 그렇게 울리느니 그냥 힘들어도 내가 조금 더 그러고 말지. 아기를 교육한다고 그렇게 울리는 거는 좀… 제가 못 감당할 것 같아요.” (참가자 5, 18개월)
의미 구조 4: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염려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를 경험하는 어머니들은 수면 문제의 결과로 발달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하였다. 이는 크게 정서 발달과 신체 발달에 대한 걱정으로 나타났다. 어머니들은 자녀의 수면 문제가 계속된다면 향후 자기조절 능력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성격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키가 크지 않을까, 뇌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보고를 토대로 어머니들이 ‘아이가 잠을 못 자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 형태의 역기능적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짜증도 많이 내고 성격도 안 좋을 것 같은. 성격 형성에 안 좋지 않을까요?.” (참가자 3, 14개월)
“근데 제일 우려되는 거는 두뇌 발달이거든요.” (참가자 7, 27개월)
의미 구조 5: 피로와 부정적 정서 경험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를 경험하는 어머니들은 육체적 피로와 짜증, 답답함, 죄책감,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보고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경험하는 피로는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며 부정적 정서를 유발해 배우자와 불화를 겪거나 자녀에게 짜증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정적 정서 표출 경험은 또다시 죄책감으로 이어져 ‘나는 부족한(나쁜) 어머니’라는 핵심 신념을 강화하기도 하였다.
하위 구조 5.1: 신체 증상 경험
어머니들은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 경험으로 야기된 피로와 일상 기능의 저하를 호소하였다. 피로의 영향은 인지적 영역을 비롯, 실제 신체 증상으로도 이어짐이 관찰되었다.
“새벽에 깨면 그때부터 못 자요. 저는 그때부터 아이가 깰 때까지 움직이면 안 되니까 옆에 그대로 누워있어야 해요. 그것 때문에 이명이 생겼어요.” (참가자 9, 30개월)
하위 구조 5.2: 부정적 정서 표출
자녀의 수면 문제로 인한 반복적인 피로누적은 짜증이나 화를 유발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부정적인 정서는 자녀와 배우자에게 표출되기도 하였는데, 피로와 짜증의 원인인 자녀의 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어머니들은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 잠을 못 자고 이런 게 연속되다 보니까 아침에 눈 뜨면 짜증부터 나는 거예요. 아 피곤해가지고, 아 오늘도 피곤하구나… 아침에 일어나도 잔 것 같지도 않고. 아침에 눈만 뜨면 짜증나고. 그렇다고 아이 등원시키고 다시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은 많고. 반복되는 것 같아요.” (참가자 5, 18개월)
“애기가 조금만 징징대도 왜 그러냐고, ‘왜 그래!’ 이러면서 잘 안 받아주고, 징징대도 안 달래주고. 그냥 좀 방에 들어가 버리거나 그런 경우도 있고요.” (참가자 6, 23개월)
하위 구조 5.3: 죄책감
어머니들은 자녀 수면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여기며 스스로 탓하기도 하였다. 또 아이가 못 자는 까닭을 노력으로 해소할 수 없는 유전적 소인 때문이라 여기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누적된 피로로 인해 표출된 부정적 정서 또한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서 조언을 주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해 봐야 해하고. 그러면 내가 그런 것을 할 줄 몰라서 애가 이렇게 안자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죠….” (참가자 1, 8개월)
”아 나를 닮아서 아이가 푹 못 자는 것 같아서 사실은 좀 미안할 때도 많이 있거든요.” (참가자 10, 34개월)
하위 구조 5.4: 어머니의 우울감
어머니들은 자녀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나 올바른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함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막막함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는 것으로도 보인다.
“모르겠어요. 뭐가 정답인 건지. 어쩔 때는 잘 자고, 어쩔 때는 잘 안 자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환경이 제대로 안 된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참가자 3, 14개월)
해소되지 않는 수면 문제로 인한 답답함과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끝내 어머니들에게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문가의 진단을 받은 이는 없었으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을 고려하거나, 자살 사고를 보이는 등 중한 수준의 우울감이 보고되었다.
“좀 우울증처럼,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건 아닌데 스스로 느낄 때 좀 약간 화도 많이 내고, 무기력함도 많이 느끼고 했어요. 그래서 좀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얘랑… 아기띠를 매고 얘랑 같이 뛰어내릴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참가자 10, 34개월)
의미 구조 6: 어머니의 불면 경험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를 경험함은 곧 어머니도 불면을 경험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었다. 어머니들의 수면은 아이가 자다 깨거나 다시 잠들기 위해 어머니를 필요로 하기에 분절된 형태로 나타났는데, 어머니들은 아이가 다시 깨어나기까지 잠들어 있는 시간을 자신만의 시간으로 여기며 온전히 누리기를 희망해 피로함에도 불구, 잠들기를 미루기도 하였다. 이로 인한 수면 부족이 다음 날의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을 예측하기도 하였으나, 아이는 어차피 곧 다시 깰 것이기에 이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자는 것은 ‘아까운 일’로 어머니들은 깨어 있기를 선택하였다.
하위 구조 6.1: 온전한 나만의 시간
자녀가 잠시 자는 시간은 어머니들에게 어떠한 방해도 없는 유일한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 동안 잠을 자는 것은 무척이나 아까운 일로 여겨져 어머니들은 의도적으로 취침을 지연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이 잠을 미룬 시간 동안 주로 하는 활동은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잠들고 바로 자지 않고 그렇게 시간을 딜레이 해서 자는 이유가 바로 누워서 잠이 들지도 않고, 또 바로 자고 그 다음날 애가 깨어 있을 때는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니까 그 시간만이라도 누리고 싶은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참가자 5, 18개월)
“거의 2-3시까지는 저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잠 깨고 화장실 다녀오면서 휴대폰 하고 드라마 보기.” (참가자 4, 17개월)
하위 구조 6.2: 자녀의 수면에 좌우되는 나의 수면
어머니들의 수면 부족은 취침 지연 행동과 더불어 ‘곧 아이가 깰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서도 기인하였다. 어차피 나의 수면은 방해받을 것이라는 해석은 다음 날의 피로가 예상됨에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어머니들의 수면 문제는 자녀의 수면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자녀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면 내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가정을 통해 이차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일단 애가 새벽에 깨니까, 조만간 애가 일어날 것이란 생각에, 제가 잠을 푹 자다가 애가 깼을 때 그냥 주는 거랑, 제가 한참 깨서 놀다가 이제 막 자려고 하는데 애가 조만간 깰 거라고 생각하는 거랑,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되면 그만큼 더 잠이 제가 원하는 대로 안 들게 되는… 그런 것들도 있고. 그걸 알면서도 그게 실천이 잘 안 되는 거죠. 어쨌든 무조건 2시에 자면 내가 내일 분명히 피곤하겠구나 아침에 일어나도. 또 임신 중이라 커피도 못 먹으니까. 분명히 내일 힘들겠구나 예상을 하죠. 내일 무조건 낮에 힘들겠구나.” (참가자 6, 23개월)
“엄마도 수면에 장애가 생기는 게 아이의 수면 때문에 결국에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이 미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 아이의 수면이 보장이 어느 정도 되고 아이의 분리 수면이 완벽히 된다면 그 다음에 내가 잠드는 것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참가자 8, 28개월)
역기능적 신념 및 행동의 순환 구조
영유아 수면 문제 경험에 대한 여섯 가지 의미에 내포된 역기능적 신념과 파생된 행동의 순환 구조는 그림과 같이 도출할 수 있다(Fig. 1). 한국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잠들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아이를 울려서는 안된다’ 같은 가정과 규칙 형태의 중간 신념은 밤새 아이의 곁을 지키고 작은 신호에도 바로 반응하는 비합리적 행동을 유발하고 있었다. 행동의 결과 어머니들은 피로와 부정적 정서를 자녀에게 표현하게 되고, 이는 죄책감과 ‘나는 부족한(나쁜) 어머니’라는 핵심 신념을 강화하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들은 ‘자녀의 수면 문제가 먼저 해결되면 내 수면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아이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에 힘쓰며 자신의 수면은 미뤄 피로를 가중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역기능적 신념과 그로 인한 결과는 순환하며 영유아 수면 문제를 지속시키고 있었다.
고 찰
본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이 보고하는 영유아 수면 문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유아 수면 문제의 양상을 파악하고, 문제 경험에 대한 의미를 분석해 어머니들이 영유아 수면에 대해 가지는 역기능적 신념과 행동을 도출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분석 결과, 한국 영유아의 수면 문제 양상은 크게 수면 개시의 어려움, 빈번한 각성과 스스로 다시 잠들지 못함, 한계 설정의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머니들에게 ‘자녀의 수면 문제는 어머니의 도움을 구하는 것임’, ‘수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론’,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문제’,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염려’, ‘피로와 부정적 정서 경험’, ‘어머니 자신의 불면 경험’의 여섯 가지 의미로 경험되고 있었다. 의미는 다시 역기능적 신념으로 해석되어 ‘아이가 잠들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아이를 울려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잠을 못 자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부족한 어머니이다’,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면 내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같이 규칙과 가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역기능적 신념은 어머니로 하여금 자녀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합리적 행동을 시도하게 해, 밤 중에도 아이가 깨면 작은 단서에도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그렇게 행동하기 위해 밤에 높은 각성 상태를 유지하며 곁에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영유아 수면 문제는 취침 시간에 주어진 자극과 수면을 연합해 발생하는 것으로, 깰 때마다 부모가 돌봄을 제공하는 반응이 반복되면 영유아는 부모의 돌봄 없이는 잠들 수 없음을 학습하게 된다[14]. 어머니들은 배고픔이나 애정 부족 같은 부수적인 요인을 원인으로 추론해 취침 시간 중 과도한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역기능적 신념에 기초한 부모의 행동 전략은 수면 단절로 인한 불면증을 유발한다. 불면증이 있는 부모는 자녀의 수면을 포함한 수면 관련 부정적 자극에 주의 편향을 가지게 되므로[11,12] 영유아와 부모의 수면 문제는 해소되지 못하고 유지된다. 즉, ‘취침 시간에 유아가 각성함(또는 울거나 보챔) - 부모가 주의를 기울이고 과도한 돌봄을 제공함’의 과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불면 경험은 다음 날의 피로와 부정적 정서를 수반해,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다음 자책하며 밤 동안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합리적인 전략에 더욱 매진하였다.
한국 어머니들의 영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은 규칙 및 가정으로 표현되는 중간 신념과 기저의 핵심 신념으로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자녀가 최초 입면시나 야간에 각성했을 때,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경험을 보고하며 ‘아이가 잠들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가정은 ‘아이가 잠들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규칙과 연결되어, 내가 아이 곁에 있어 주지 않으면(높은 기준의 칙) 아이는 잘 못 잘 것이고(즉각적인 결과) 결국 정서나 신체 발달에 문제가 일어날 것(파국적인 최종 결과)이라는 염려를 통해 드러났다. Basco가 제안한 완벽주의적 인지 도식은 ‘나는 완벽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로 대표된다[30]. 아이가 잠드는 동안, 그리고 자는 동안 늘 곁을 지키는 것은 실제로 수행하기 무척 어려운 일이나, ‘다른 방법이 없기에’ 과도한 목표를 수행해야만 한다는 어머니들의 완벽주의는 유지되고 있었다. 이렇듯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로 인해 어머니들은 중간중간 아이가 깨서 우는 실패 경험을 하게 된다. 완벽주의자들은 실패 경험에서 비판적인 자기평가를 하며 ‘나는 실패자다’, ‘내가 더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와 같은 결론[31]에 이르게 되며, 이는 어머니의 무력감과 피로를 가중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울려서는 안 된다’는 규칙은 두 가지 맥락에서 드러났다. 첫째는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울기 전에 빠르게 개입해 그것을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둘째는 아이의 울음소리(고통)를 감내하지 못하고 ‘못 감당할’ 일로 여겨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바로 뛰어들어가’ 달래 주는, 즉 ‘내가 좀 고생하고 마’는 대처 방략을 택함에 있었다.
이러한 규칙과 가정의 밑바탕에는 ‘나는 부족한(나쁜) 어머니다’라는 핵심 신념이 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신념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과도한 노력을 수반하기에 어머니들은 비합리적인 규칙과 가정을 지키며 아이의 곁에서 즉각적으로 요구에 반응하는 비합리적 행동을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과도한 개입 행동은 곧 어머니의 수면장애로 이어진다. 어머니들은 수면장애로 인한 신체 및 정신적 피로를 경험했으며 그에 따른 기능 저하나 부정적 정서 경험을 보고했다. 피로로 인한 부정적 정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부정적인 정서로 표출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화를 냈다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한 연구는 어머니의 죄책감을 유발하는 주원인으로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32 어머니들은 밤 중에 아이가 깨거나 수면 부족으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것처럼 자녀의 수면을 잘 다루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의 원인을 다양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타고난 기질에 원인을 돌리거나, ‘낮에 사랑을 받지 못해서’, ‘배부르지 않아서’, ‘엄마가 옆에 없어 즉각 대처가 안 돼서’ 잘 자지 못한다는 추론이 주였는데, 이는 ‘내가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즉,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핵심 신념으로 다시 귀결된다.
유아 수면 문제 경험에서 도출된 또다른 가정은 ‘자녀의 수면이 해결되면 내 수면은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였다. 어머니들은 아이의 발달 저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해 아이의 곁에 머무르거나 즉각적인 도움을 취하며 아이의 수면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로 어머니들은 자녀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거나, 자녀가 밤중에 깨어날 때마다 같이 깨 수면 부족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수면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은 아이가 자는 동안 자신도 자는 것을 ‘아까운 일’이라 여기며 다른 활동을 하기를 선호하였다. 이렇듯 취침 시간을 미루는 이유는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부족한 수면의 결과로 다음 날의 피로가 예상됨에도 ‘일부러 잠 깨고 휴대폰 하고 드라마를 보는’ 나를 위한 보상을 택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잘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없음에도 개인이 의도한 시간보다 자발적으로 늦게 잠자리에 드는 행동인 취침 시간 지연행동으로 설명된다[33]. 최근 연구는 취침 시간 지연 행동의 기능을 ‘의도적인 지연’, ‘생각 없이 하는 지연’, ‘전략적 지연’으로 설명하고 있다[34]. 여기에 빗대어 보면 어머니들의 취침지연 행동은 나에게 보상을 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 즉 정서를 조절하기 위한 기능이 있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취침 시간 지연 행동 수준이 높을수록 불면증 심각도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35] 어머니의 신체적 안녕과 불면에 따른 피로로 영유아 수면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위한 적절한 수면개입 또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불면 경험은 ‘조만간 아이가 깰 것’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 경험되는 어머니의 불면은 ‘아이의 수면이 보장’되는 때, 즉 ‘아이가 또 일어나지 않을 때’ 해소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어머니의 수면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아이의 수면 문제 해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호작용 모델[12]에 따르면 부모 요인과 유아의 수면 요인은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유아 수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어머니와 자녀 모두에게 개입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접근이 될 것이다.
한국 어머니들의 사례에서 관찰된 역기능적 신념은 서구 문화권에서 진행된 선행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이가 잠들 수 있도록 부모가 개입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아이의 울음을 도움이 필요한 스트레스 상황으로 해석한다’고 보고된 바가 있었으며[17-20] 미국의 유명 온라인 육아 게시판에 게재된 수면 관련 고민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어머니들은 아이를 밤에 재우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이나 수면 문제로 인한 애착형성에 대한 고민을 언급하였다[36].
또한 한국 어머니들의 역기능적 신념은 영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질문지인 MCISQ (Maternal Cognitions about Infant Sleep Questionnaire)a17]의 하위 요인과도 유사한 점이 있었다. MCISQ는 20개 문항을 6점 리커트 척도로 평정하며, 하위 요인으로 ‘제한 설정’, ‘분노’, ‘의구심’, ‘수유’, ‘안전’에 대한 인지를 측정한다. 요인분석을 통해 각 하위 요인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난 문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한 설정을 대표하는 문항인 “나는 자녀가 밤중에 깨어났을 때 아이의 요구에 저항할 수 있다”는 한국 어머니들이 아이의 울음을 견디기 어려우며 자녀가 잠들기 위해서는 꼭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내용과 흡사하다. “아이가 밤중에 울면 차라리 아이가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로 대표되는 분노 요인은 유아 수면 문제를 통해 경험하는 피로 및 부정적 정서와, “아이가 여전히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밤중에 깨야만 한다”로 대표되는 의구심 요인은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내가 나쁜 부모라는 뜻이다” 라는 요인 내 다른 문항과 연결되어 한국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나는 부족한 어머니이므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인지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밤중에 수유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배가 고플 것이다”로 대변되는 수유 요인 또한 한국 어머니들이 배고픔을 수면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내 아이가 예상치 못하게 자다가 죽을 수 있다”로 대표되는 MCISQ의 마지막 요인인 안전에 대한 인지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해당 요인은 두 문항으로 구성되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면 중 영아의 사망을 나타내는 영아돌연사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 SIDS)에 대한 염려와 “아이가 밤중에 울면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일반적인 안전에 대한 불안을 측정한다. 본 연구에 참여한 한국 어머니들은 아이의 울음에 개입하기는 하나, 우는 이유를 ‘내가 부족하기 때문(낮에 사랑을 주지 못함; 배가 고픔)’, ‘예민하기 때문’과 같이 추론하며 안전에 대한 염려를 보고하지는 않았다. 이 결과를 한국 어머니들은 SIDS나 기타 안전문제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우나, 추산된 국내 SIDS의 발생률이 1,000명당 0.2-0.36명으로 해외 발생률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37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탐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가능성으로 한국 문화권의 특징에서 비롯한 코슬리핑, 즉 보호자와 아이가 같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잠자리는 구분되어 있으나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수면 형태를 들 수 있다[25]. 일반적으로 비서구문화권에서 주로 나타나는 집단주의 문화는 자신을 포괄적인 사회적 관계의 일부로 여기고 타인과 상호의존을 경험하는 데 가치를 두며 특히 가족과 같은 가까운 내집단에서 두드러진다[38]. 한국은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로 ‘나’ 라는 존재는 한 개인보다 ‘우리 가족’이라는 내집단의 부분으로 생각된다. 이에 아이를 포함한 전체인 가족이 잘 자기 위해 개인(부모)가 수면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나타난다[39]. 이러한 문화적 특징과 본 연구에서 드러난 ‘아이의 요구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잠들기 위해서는 내가 필요하다’는 역기능적 신념이 결합하여 한국 어머니들은 늘 아이의 곁에 머무르는 수면형태인 코슬리핑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 코슬리핑 집단과 분리 수면 집단 영유아의 각성 횟수를 살펴 본 연구에 따르면, 객관적인 각성 횟수는 차이가 없었으나 코슬리핑을 하는 집단의 영유아에서 부모가 주관적으로 평가한 각성 횟수가 더 많이 보고되었으며, 객관적인 부모의 개입의 횟수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25]. 즉, 자녀를 곁에 두고 위험 신호로 여겨지는 각성에 바로 개입하기에 안전에 대한 염려가 도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코슬리핑은 질식이나 누운 자세로 인한 SIDS의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하며[40], 더 짧은 유아의 총수면시간41이나 더 많은 각성 횟수[24]와 관련이 있으므로 올바른 수면 문화 정착을 위한 적절한 인지 개입과 정보 제공이 필요할 것이다.
본 연구의 한계와 후속 연구를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석 대상이 한국인 어머니 10인으로 한정되어 있다. 최근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아 수면 문제의 원인을 해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음이 보고되어[42], 한국 부모가 경험하는 유아 수면 문제에 대한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연구 대상에 아버지를 포함해 연구 대상자 수를 늘려 후속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어머니의 경험 서술을 통해 영유아 수면에 대한 왜곡된 인지 내용은 파악할 수 있었으나, 그 수준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유아 수면에 대한 인지 왜곡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도구가 함께 사용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역기능적 신념과 과도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한 효과적인 인지행동 개입법을 개발하고, 영유아 자녀와 부모의 수면 및 정서 문제의 변화 정도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한국 어머니들이 영유아 수면에 대해 가지는 역기능적 인지의 내용과 그것의 문화적 보편성 및 특이성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영유아 수면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부모가 가지는 영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한 개입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영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은 부모와 자녀 모두의 수면 문제 형성과 유지에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인지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개인이 생각하기에 자녀의 수면 문제로 일어날 수 있는 파국적인 결과나 (예: 아이 발달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자신이 자녀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해야만 하는 규칙이나 가정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내고, 그러한 중간 신념의 밑바탕에 자리한 ‘나는 어떠한 부모인가’에 대한 핵심 신념을 파악해 이를 적응적으로 교정하는 것으로 구성될 수 있다. 선행 연구에서도 아동 수면에 대한 부모의 역기능적 신념 수준이 높을수록 객관적으로 더 잦은 부모의 개입과 영유아 자녀의 각성, 그리고 부모의 높은 불면증 심각도가 보고된 만큼[43] 궁극적인 가정 내 수면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유아 수면 문제 형성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부모의 경직된 인지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때, 수면 교육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행동 수면 개입(behavioral sleep intervention)은 유아가 혼자서도 잠들 수 있도록 부모의 개입을 감소하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방법으로 미국 수면학회가 권장하고 있다[44]. 해외에서 효과가 입증되어 영유아 수면 문제에 가장 적합한 개입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4,19]과 달리 한국 어머니들은 수면 교육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수면 교육이 ‘아이를 울리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못한 것이라 여기고 있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이를 실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행동 수면 개입을 제공하는 것이다. 수면 교육을 자녀에게 시도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행동 수정 전략을 상담하며 기록지를 작성해 점진적인 취침 시간 개입 감소를 이끌어낼 수 있다. 셋째는 부모의 불면증에 개입하는 것이다. 부모의 불면증은 수면과 관련된 부정적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유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을 가중하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개입 또한 필요하다. 성인에서도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불면증 심각도나 주간 기능 개선을 지속시키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45] 부모의 수면에 대한 역기능적 신념에도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 어머니들이 잠에 들기를 미루고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된 취침지연 행동을 특징적으로 보인 바, 수면 문제에 인지행동적으로 개입해 부모의 불면과 궁극적인 영 유아 수면 문제의 개선까지 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이 경험하는 영유아 자녀의 수면 문제 양상을 파악하고 수면 문제 경험에 내포된 의미와 역기능적 신념을 파악하고자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 어머니들에게 자녀의 수면 문제는 ‘어머니의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아이가 잠들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면 문제는 계속되면 ‘성장과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무슨 일이든 아이를 울리지 않아야 한다’ 는 역기능적 신념과 밤새 아이의 곁에 머무르는 비합리적 행동을 가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절대 울지 않는다는 것은 실현되기 어려운 일로 필연적으로 실패 경험을 하게 돼 ‘나는 부족한 어머니’라는 핵심 신념을 강화했다. 본 연구는 국내 최초로 영유아와 부모의 수면에 대한 인지에 주목하여 수면 문제를 지속, 가중하는 순환 구조를 밝혀낸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영유아 수면 문제에 인지적으로 개입해 수면 문제가 학령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낮추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수면의 질 개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