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은 정신신체장애를 연구하던 중 도입된 개념으로, 개인이 경험한 감정을 적절하게 식별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지-정동 이상을 나타내는 용어이다[1]. 이는 정서 조절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소견일 뿐 아니라 일반적인 인격의 특성으로 보기도 하며[2,3], 아직까지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5 (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 [4]에서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감정 불능증이 유발하는 특징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감정을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이 어려우며(difficulties identifying and describing one’s own emotions), 2) 신체적 증상과 감정을 구별하는 것이 어렵고, 3) 감정적 상상력이 한정되어 있으며, 4) 구체적이고 외부 지향적인 인지 스타일이다(externally orientated thinking style) [5].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Toronto 감정표현불능증 척도(Toronto Alexithymia Scale-20, TAS-20)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진단하는 데 잘 알려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이다[6].
감정표현 불능증의 유병률은 일반인에서도 대략 10% 정도로 보고되고 있는데[1], 나이가 많은 남성이거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혹은 저소득층에 속할수록 발병 위험이 높을 수 있다[7]. 또한, 정신신체장애 및 자폐 스펙트럼 장애, 섭식 장애, 중독성 장애, 강박성 장애, 불안 등의 정신질환을 가진 인구 집단에서 높은 유병률로 관찰되었다[1]. 이러한 정신과적 질환 외에도, 알레르기, 천식, 암,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염증성 장 질환 및 당뇨병과 관련되어 있음이 보고되었다[8]. 이렇듯 감정표현 불능증이 있을 경우 다양한 신체 질환과 정신과적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서 조절의 어려움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의 결함과도 관련이 있어, 개인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대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9]. 따라서 감정표현불능증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취약 요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감정표현불능증은 수면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되어 왔고[10,11], 최근의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유의한 연관성이 증명되었다[12]. 하지만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간의 연관성은 우울과 불안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전에 감정표현불능증, 우울증, 불안증 및 수면 장애 간의 연관성이 확인된 바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13,14]. 하지만 최근 한 연구에서 우울과 불안 여부에 관계없이 감정표현불능증이 나쁜 수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상태이고[11],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그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과의 관계를 규명하고, 감정표현불능증이 우울 및 불안 증상과 상관 없이 수면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방 법
대 상
본 단면 조사 연구는 2016년에서 2022년 사이에 중앙대학교병원 수면 클리닉을 방문한 환자들 중 설문조사를 완료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참가자는 만 18세 이상 성인인 경우에 대상으로 하였으며,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학적 결손이 있거나, 심장병, 암, 만성콩팥병 등 중대한 내과적 질환, 또는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제외하였다. 최종적으로 142명의 대상자가 포함되었고, 대상자들로부터 나이, 성별, 교육 수준 및 직업 정보의 인구학적 정보가 수집되었다(Fig. 1). 본 연구는 중앙대학교 기관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얻은 후(IRB No. 2303-007-19461) 자료 수집이 진행되었다.
대상자들은 Toronto 감정표현불능증 척도(TAS-20) [15,16]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대상자들로부터 연령, 성별과 같은 인구 통계학적 정보와 엡워스 졸음 척도(Epworth Sleepiness Scale, ESS) 점수, 피츠버그 수면의 질 지수(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 PSQI), 불면증 심각도 척도(Insomnia Severity Index, ISI), 벡 우울척도(Beck Depression Inventory, BDI) 점수 및 상태불안척도(State Trait Anxiety Inventory-State, STAI-S) 점수 등 설문조사 정보가 수집되었다.
측정도구
Toronto 감정표현불능증 척도
TAS-20은 20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자가보고형 검사로, 감정불능증 구조의 세 가지 하위 요인인 ‘감정을 인식하는 것의 어려움(difficulty identifying feelings)’, ‘감정을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difficulty describing feelings)’, ‘외부 지향적인 사고(externally oriented thinking)’로 구성되어 있다[6]. 대상자는 1 (“매우 동의하지 않음”)에서 5 (“매우 동의함”)까지의 5점 리커트 척도로 항목에 응답하여 총 점수 범위는 20에서 100까지이다. TAS-20의 영어 버전에서는 경험적으로 총점이 60이 넘을 경우, 감정표현불능증 정도가 높다고 판단하고, 52 미만인 경우 감정표현불능증이 확실히 없다고 판단한다[17]. 우리는 Lee 등이 번안 및 타당화한 한국판 Toronto 감정표현불능증 척도[16]를 사용하였고, 대상자들을 감정표현불능군(TAS-20 ≥61), possible 감정표현불능군(52≤TAS-20≤60), 비감정표현불능군(TAS-20≤51)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상태불안척도
이 연구에서는 일반화된 불안 경향성(특성 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State Trait Anxiety Inventory-Trait (STAI-T)는 사용하지 않았고, STAI-S를 사용하여 현재 불안 증상(상태 불안 수준)을 평가하였다[19]. 참가자들은 질문지의 각 문항과 관련된 불안 수준을 리커트 척도를 사용하여 평가하며, 그 시점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1 (전혀 아니요)부터 4 (매우 그렇다)까지 응답한다. 점수의 범위는 20에서 80까지이며, 높은 점수는 증가된 불안 수준과 관련이 있다. STAI-S 점수가 ≥40인 경우 불안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자료 분석
대상자들의 일반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연속변수들의 평균±표준 편차, 범주형변수들의 숫자(%)를 알아보았다. 일원배치 분산분석(analysis of variance, ANOVA)을 이용하여 감정표현불능증(감정표현불능, possible 감정표현불능, 비감정표현불능)의 그룹 간 특성을 비교하였고, 사후 분석은 Bonferroni 방법을 사용하였다. 변수들 간의 연관성은 Pearson 상관 관계로 분석되었다.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사이의 관계는 다변량 선형 회귀분석을 사용하였는데, univariable에서 TAS-20과 유의한 연관성이 없었던 PSQI를 제외하고 ESS, ISI를 종속변수로, TAS-20 점수를 독립변수로 각 회귀 모델에 입력하였다. 참가자 연령 및 성별(1=남성, 2=여성)과 univariable에서 종속변수들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던 BDI 및 STAI-S 점수도 후진제거 방법으로 다변량 회귀 모델에 함께 입력하여 유의미한 변수들을 살펴보았다. 통계 분석은 SPSS (ver. 26.0, Armonk, NY, USA)를 사용하여 수행되었고, 모든 분석에서 유의 수준은 p값이 0.05보다 작도록 설정되었다.
결 과
대상자들의 일반적 특성 및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
Table 1은 본 연구에 포함된 만 18세 이상 수면 클리닉에 내원한 성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총 142명으로 평균 연령은 55.3세였고 여성이 44명(31.0%)로 확인되었으며, 평균 STAI-S 점수는 41.3점으로 상태 불안 수준이 다소 높게 확인되었다. 감정불능증 정도에 따라 우울(p<0.001), 불안(p<0.001) 및 수면의 질(p=0.034), 불면증 심각도(p=0.004) 및 주간 졸음(p=0.004)이 다르게 나타났다. 감정표현불능군은 비감정표현불능군에 비하여 PSQI 점수가 유의하게 높았고(Bonferroni, p=0.032), ESS 점수(Bonferroni, p=0.003) 및 ISI 점수(Bonferroni, p=0.003)도 유의하게 높았다. 또한 BDI 수치는 감정표현불능군, possible 감정표현불능군, 비감정표현불능군 순으로 높았고, STAI-S는 비감정표현불능군에 비하여 감정표현불능군이나 possible 감정표현불능군에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수면과 감정표현불능증과의 관계
감정표현불능증이 불면증 심각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ISI를 종속변수로 하고, TAS-20 총점과 ISI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을 후진제거방법으로 입력하여 다변량 선형 회귀 분석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STAI-S, 나이, 성별의 순서대로 제거되고, TAS-20 총점(β=0.182; p=0.081)과 BDI (β=0.233; p=0.026)가 최종 모형으로 확인되었다(Table 3). 최종 모형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고(F=8.890, p<0.001), 설명력은 결정계수(R2)에 의하여 13.4%로 나타났다.
감정표현불능증이 주간졸음증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 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ESS를 종속변수로하고, TAS-20 총점과 ESS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을 후진제거방법으로 입력하여 다변량 선형 회귀 분석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성별, STAI-S, BDI의 순서대로 제거되고, TAS-20 총점(β=0.201; p=0.022)과 나이(β=-0.315; p<0.001)가 유의하게 ESS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확인되었다(Table 3). 최종 모형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고(F=10.077, p<0.001), 설명력은 결정계수(R2)에 의하여 14.9%로 나타났다.
고 찰
본 연구는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과의 관계를 규명하고, 감정표현불능증이 우울 및 불안 증상과 상관 없이 수면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수행되었다. 설문지를 통해 수집된 성인의 감정표현불능증이 있는 대상자들은 없는 경우에 비하여 수면의 질이 낮고, 불면증 증상이 심하며, 주간 졸음증이 높은 것으로 상관관계가 확인되었다. 또한 감정표현불능증은 불면증 심각도 및 주간 졸음증과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하지만 다변량 분석에서 우울과 불안 증상을 고려하자, 감정불능증이 주간졸음증에 주는 영향만 유의하고 불면증 심각도와는 관련성이 소실되었다.
수면과 감정표현불능증과의 관계를 조사한 이전의 연구들은 감정표현불능증이 심할수록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0-12,23]. 특히 최근의 Murphy 등[11]은 감정표현불능증이 우울이나 불안 증상과 무관하게 수면의 질 저하와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여,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간의 연관성에는 정신적 요인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이전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다른 연구[23]에서처럼, 우리 연구에서는 우울 증상이 수면의 질(PSQI) 혹은 불면증상(ISI)에 유의한 영향을 주면서, 단변량 분석에서 보이던 유의성이 다변량 분석에서는 소실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간의 관계에서는 우울 증상이 작용할 가능성 및 여러 요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많은 연구들은 아직까지 감정표현불능증이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데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매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24,25]. 아직까지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에 있으며, 보다 정확한 결과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이다.
또한 우리 연구에서 감정표현불능증이 심할수록 주간 졸음 증상 역시 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많지는 않지만, 이전에 일본에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감정표현불능증과 주간 졸음 증상의 연관성을 확인하였고[26], 투석 환자들[27] 혹은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에서도 피로 혹은 주간 졸음증과 감정표현불능증과의 연관성을 확인한 바가 있다[28]. 그 밖에, 수면다원검사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감정표현불능증이 서파수면을 감소시키고 비렘 수면 1단계를 연장시키면서 주간 졸음 증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10]. 감정표현불능증과 나쁜 수면과의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이전의 연구들과[10-12,23]. 감정 인식 능력이 떨어질수록 수면 중 각성상태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한 연구 결과[29]는 주간 졸음과 감정표현불능증의 연관성을 간접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전은 명확하지 않으나 감정표현 불능증이 야간 수면에 영향을 주며 주간 졸음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감정표현불능증이 있을 경우 정서를 인지적으로 잘 처리하지 못하면서 같은 신체 감각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1,8], 피로나 주간 졸음 및 수면 증상을 악화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당 주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연구의 제한점은 단일 센터 연구이며, 표본의 크기가 작아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는 데 제한적인 것이다. 또한 단면 조사 연구로서 수면과 감정표현불능증 간의 선후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우울이나 불안 증상에 따른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로서 그 의의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연구에서는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의 질 및 불면증 심각도와의 연관성은 확인하였으나, 우울이나 불안과 무관하게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증명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감정표현불능증은 주간졸음증과 유의한 연관성이 있 는 것을 확인하였다. 감정표현불능증과 수면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추가적인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로, 본 연구는 둘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이며, 의료 제공자들이 수면 환자를 진료할 때 감정표현불능증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